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디킨스, 제인 오스틴, 토니 모리슨(빌러비드), 엘리슨 벡델(펀홈),
존 버거(제7의 인간), 빈스 길리건(브레이킹 베드), 아론 소킨(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소설, 서사시, 희곡, 그래픽 노블, 시리즈/영화, 내러티브 논픽션, 매체와 장르를 망라한 대가들의 이야기를 읽고 논한다!
커뮤니케이션, 창작(픽션/논픽션), pr, 마케팅을 막론한 이야기꾼들의 시대,
나만의 이야기로 세상에 말 걸기 위한 기술적 분석과 인문학적 탐구!
『파이 이야기』(2002년 맨부커상 수상작,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원작)를 쓴 캐나다의 작가 얀 마텔은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당시 캐나다 수상이었던 스티븐 하퍼에게 문학 읽기를 권하는 101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얀 마텔에게 문학 읽기는 그저 오락이나 취미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한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어떤 문학 작품을 읽는지, 그들이 어떤 꿈을 꾸고, 그 꿈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묻는 건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학을 읽지 않는 수상을 비판하는 대신 그를 둘만의 북클럽에 초대합니다.
얀 마텔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같은 서구 고전부터, 중국 작가 루쉰의 『광인일기』, 고대 서사시『길가메시』, 폴 매카트니의 노랫말과 시가 담긴『노래하는 검은 새』,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 노블 『쥐』, 알랭 레네의 영화 <히로시마 내사랑> 등 시대와 지역, 장르를 망라한 문학작품들을 4년동안 읽어가며 수상에게 정성스러운 편지를 써 보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북클럽이 되고 맙니다. 그가 4년동안 받은 건, 수상을 대신해 공무원들이 쓴 (“선생의 편지에 감사드립니다.” 같은)일곱통의 형식적인 답장들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얀 마텔,『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작가정신.)
얀 마텔은 오늘날 이야기의 위기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봅니다. “서구에선 중년 백인 남성들이 픽션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들이 모든 걸 지배 중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그들이 꾸는 꿈이 내겐 최악의 악몽이 될 수 있다. 픽션은 가치 있는 꿈, 살아갈 수 있는 꿈을 꾸기 위해서 필요하다.” (한겨레, ‘파이 이야기’ 작가 얀 마텔, “책 읽지 않는 위정자의 꿈은 악몽”.)
많은 사람들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영역인 ‘이야기’ 창작을 위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을 사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과 인간의 창작은 완전히 다른 걸까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인간 창작의 기저에도 서사를 구조화하는 다양한 기계적 방법론들이 존재해왔습니다. 변화무쌍한 삶의 메타포로서, 생장과 해체, 진화를 반복하는 플롯, 장르, 캐릭터라이징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바둑이 규칙안에서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산출하듯, 그런 구조들은 이야기를 획일화시키기는커녕 무수한 창의적 서사의 토대가 돼 왔습니다.
그것은 비단 픽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와 아주 거리가 먼 것 같은 분야에서도 이야기 구조가 사용됩니다. 가령 세계적인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도넛 경제학』에서 신고전파 경제학과 대안적 경제학의 체계를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희곡으로 각색하여 설명합니다. 세계 유명 대학들에서 교재로 쓰고 있는 경제학자 조나단 B. 와이트의 교양서『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을 소설 형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내러티브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은 단순한 변용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지평을 열어줍니다.
이야기 창작에 있어 인간은 이미 서사-기계라는 사이보그적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천일야화』에서 극악한 왕에게 1001일 동안 세상의 온갖 신화, 전설, 민담을 융합시킨 280여편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줘, 죽음을 모면한 세헤라자데는 거의 최초의 사이보그적 이야기꾼일겁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학기술의 총아인 생성형 인공지능이 세헤라자데와 같은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왕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죽음을 면할 수 있을까요? 세헤라자데와 인공지능의 차이는 뭘까요? 이야기란 단지 우리를 한시도 지루하지 않게 해줄 그럴듯한 정보 값의 조합이나 기술에 불과할까요?
SF문학의 대가인 테드 창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의도, 감정, 목적”이 없는 언어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글쓰기에 회의적이라고 말합니다. 왕이 세헤라자데를 죽이지 않은 것은 이야기 자체보다 ‘의도, 감정, 목적’ 같은, 이야기를 둘러싼 에토스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왕과 세헤라자데 사이에 관계성을 만들어냅니다. 이야기란 불특정한 ‘그’에게 보내는 텍스트가 아니라 고유한 ‘너’에게 말을 거는 행위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야기는 인간적인 것이 됩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이야기를 위기에 빠트리는 것은 인간화된 인공지능이 아니라 오히려 인공지능화된 인간일 것입니다. 얀 마텔처럼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서로에게 들려주고 있나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디킨스, 제인 오스틴, 마르케스, 어슐러 르 귄, 이청준, 아녜스 바르다, 빈스 길리건, 아론 소킨, 웨스 앤더슨... 지상 최고의 이야기꾼들인 그들의 이야기는 절륜한 기술적 성취이자 한 사람에게 보내는 곡진한 편지입니다.
⭐ ‘북클럽: 이야기꾼들’에서는 소설, 서사시, 희곡, 그래픽 노블, 시리즈/영화, 내러티브 논픽션, 매체와 장르를 막론한 대가들의 이야기를 읽고 논하고 이에 대한 글을 씁니다.
🚩 이야기의 로고스(육체)를 기술적으로 분석하고, 이야기의 에토스(정신)를 인문학적으로 탐구합니다. ‘북클럽: 이야기꾼들’은 나만의 이야기로 타인, 사회, 시대에 말 걸기를 꿈꾸는 이야기꾼들을 기다립니다.
-매월 클럽장이 선정한 한권의 책(시리즈/영화)을 각자 읽고(보고) 에세이를 써서 채팅방에 인증합니다. 월말에 오프라인에서 클럽장의 발제와 각자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해당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입장 승인은 매월 1일~5일에 이루어집니다.
-본 클럽에서 다루는 시리즈/영화 중에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들이 있어서 성인만 가입 가능합니다.
-각자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문장(최소 한 문장에서 한 문단 정도까지)을 발췌하고 그 이유(짧은 코멘트)를 함께 써서 채팅방에 인증합니다. 발췌한 부분들이 징검다리를 이뤄 대략 책의 초반부터 후반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합니다. 징검다리는 조밀할 수도 듬성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문장들로 내 마음과 타인을 잇는 브릿지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책 읽기 여정이 즐겁게 이어질 수 있도록 서로의 인증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예시: 8월 책 『펀 홈』 '한문장 인증')
-에세이는 A4 반페이지 이상의 분량을 써서 늦어도 정기 모임 이틀전까지 인증해주셔야 합니다. 에세이를 써서 인증해주셔야 정기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에세이는 매우 자유로운 형식입니다. 논리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그 범주를 확장시키는 창의적 에세이 쓰기를 지향합니다.
(예시: 8월 책 『펀 홈』 '글쓰기 인증')
-월말 정기모임은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3시간) 신촌이나 합정에서 진행됩니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추후 공지됩니다. 참여자의 발언 시간을 적절히 보장하고 대화의 밀도를 유지하기 위한 적정인원의 초과가 예상될 때는 모임 일정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매월 21일(3주)이내에 에세이를 쓰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책 읽기 가이드’(PDF 파일)를 제공해드립니다. ‘책읽기 가이드’는 플롯(이야기 구조, 장르), 캐릭터(인물의 성격, 유형, 개성), 언어(문장의 논리, 미학, 창의성), 콘텍스트(인문학적 맥락, 이데올로기, 지금 여기의 질문들)의 네가지 카테고리로 책을 분석하고 질문거리, 생각거리를 제시합니다.
(8월 책 『펀홈』 읽기 가이드 중 일부)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사랑하는, 작가이자 문화기획자 김호빈이라고 합니다. 인문학과 영화의 대화를 통해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논한 인문‧예술 에세이 『로맨스 영화를 읽다: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의혹 혹은 믿음』(메멘토, 2022)를 썼습니다. 시민을 위한 문화, 예술저변을 만들고 대안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공공영역, 사회적 경제 안에서 영화, 책, 인문학을 결합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진행/강의해왔습니다. 저마다 고유한 이야기를 지어 삶을 아름답게 건축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이야기의 재미와 문학성, 언어적 아름다움, 인문학적 깊이를 두루 갖추고 있는 작품을 선정합니다.
-소설, 서사시, 희곡, 그래픽 노블, 시리즈/영화, 내러티브 논픽션 분야를 균형적으로 선정하고 인간, 사회, 역사의 보편적인 주제들을 심원하게 통찰하는 고전과 여성주의, 생태적 삶, 대안적인 가치 등 동시대적 문제들을 고민하는 모던 클래식을 고루 다룹니다.
-책 분량상 한달 안에 읽기 어려운 책은 두 달 동안 나누어 읽습니다. 한달에 보통, 시리즈는 한 시즌, 영화는 한편 다루게 됩니다.
-클럽장이 권하는 번역본은 있지만 책을 구하기 힘든 경우나 개인의 의사에 따라 다른 번역본을 읽어도 무방합니다.
8월에는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노블 『펀홈』(이현 옮김, 움직씨)을 함께 읽었습니다. 『펀홈』은 영문학사에 남을 회고록이자 그래픽 노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으로, 작가엘리슨 벡델의 자전적 성장기가 조이스, 카뮈, 피츠제럴드, 프루스트 등의 고전문학, 가족, 삶과 죽음, 성정체성과 같은 보편적 주제와 교차하는 희비극입니다. 연극과 뮤지컬 분야 최고상인 토니상 5관왕을 석권한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9월에 함께 다룰 책은 SF 문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작가 필립 K.딕(1928~1982)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입니다. 필립 K.딕은 특유의 SF적 상상력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결합하여 독보적인 문학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고전인 이유는 그런 장르적 세계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적 재미와 장르적 상상력, 철학적 깊이를 고루 갖춘 그의 작품들은 <토탈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등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는 필립 K.딕의 대표작 중 하나로 로봇 안드로이드를 추적하는 현상금 사냥꾼 릭 데카드의 삶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명작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의 원작으로도 유명합니다.